밤 11시, 정적을 깨는 슬랙 알림음이 울립니다.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심박수를 높입니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개발팀의 짧은 한마디가 떠 있습니다.
“이 기획, 구조상 구현이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할 것 같아요.”
몇 주를 꼬박 갈아 넣은 기획서입니다.
손이 잠깐 멈추고, 심장 어딘가가 툭 내려앉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는 아플 틈도 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기 시작합니다.
기획자는 멘탈이 강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프로답지 못하다.
그리고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지로 누른 채 다시 기획서를 엽니다. 다음 날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수정안을 공유합니다. 이 장면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익숙하다면, 오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한 것은 아닙니다.
기획자의 세계에는 이상한 불문율이 하나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함이고, 로봇처럼 빠르게 털고 일어나는 것이 프로의 증거라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피드백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척, 아이디어가 묵살당해도 괜찮은 척합니다.
하지만 그 ‘척’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피드백이 와도 더 이상 아프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기획을 대할 때 더 이상 설레지도 않게 됩니다. 감정을 차단한 것이 아니라, 기획자로서의 감각 자체가 무뎌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멘탈 관리를 잘못 이해했을 때 기획자에게 찾아오는 가장 조용하지만 위험한 위기입니다.
2. 상처받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나는 진심이다.
아이디어가 거절당했을 때 속상한 건 그 기획에 내가 진짜로 무언가를 담았다는 뜻입니다. 개발팀과의 협의가 틀어졌을 때 답답한 건 그 서비스가 더 잘 되길 바란다는 욕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정은 관여도의 증거입니다.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기획자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잃을 게 없는 사람은 시장에 진짜 임팩트를 주는 기획을 하기 어렵습니다. 멘탈 관리의 목표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감정을 다음 스텝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3. 성장하는 기획자는 단단함이 아니라 탄성에 있다.
물리학에서 강도와 탄성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강도는 버티는 힘이고, 탄성은 돌아오는 능력입니다. 깨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너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획자는 상처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다음 기획의 연료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오래 일하는 기획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흔들린 뒤 돌아오는 속도가 빠른 사람입니다. 감정을 느끼되, 그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감정을 다음 판단의 재료로 씁니다. 이것이 탄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래 살아남는 기획자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이 탄성을 가지지 못한 기획자들이 반복해서 무너지는 이유는, 대부분 멘탈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