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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량 3배, 성과는 제자리
1. 우리 회사 AI는 일하는 척만 한다.
1. 우리 회사 AI는 일하는 척만 한다.

직원 AI 사용량은 3배, 회사 성과는 제자리》 1편


이 연재는 가상의 기업이 12주 동안 AI 활용 방식과 투자 기준을 바꿔가는 이야기입니다. 회사, 인물, 수치는 모두 가상으로 구성했습니다. 삽화는 AI 이미지 생성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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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량은 212% 늘었는데…

“제안서 초안 작성이 빨라진 건 알겠습니다. 그래서 고객사가 최종 제안서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줄었습니까?”


대표님의 질문에 이 과장은 화면을 다시 봤습니다.

- 전사 AI 사용량 212% 증가(약 3배)

- 제안서 초안 작성 시간 평균 41% 단축


방금 설명한 숫자는 있었지만, 대표님이 물은 숫자는 없었습니다.


분기 예산회의였습니다. AI 전환 실무를 맡은 이 과장은 경영기획팀장 옆에서 지난 1년의 AI 도입 성과를 보고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슬라이드에는 내년도 AI 예산 증액안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라이선스 확대, 사내 시스템 연동, 교육 프로그램. 성과 보고를 마치면 그 계획을 설명할 차례였습니다.


“고객사에 보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따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은 화면에 띄워진 사용량 그래프를 가리켰습니다.

“그걸 먼저 봅시다. 초안을 빨리 쓴 만큼 고객도 덜 기다리게 됐는지요.”


회의가 끝난 뒤에도 이 과장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AI 사용량은 실제로 늘었고, 제안서 초안 작성 시간도 줄었습니다. 직원들은 AI 활용법을 익혔고, 이 과장은 그 변화를 숫자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들로는 예산을 더 써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이 과장은 영업지원팀과 함께 이전 제안서와 관련 메일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AI 도입 전후로 각각 3개월 동안 처리한 건 가운데, 법무팀의 계약 조건 검토까지 거친 같은 유형의 제안을 추렸습니다. 도입 전 14건, 도입 후 12건이었습니다.


고객사의 요청을 받은 날부터 가격과 계약 조건까지 확정한 최종 제안서를 보내기까지. 기록상 그 기간은 평균 19일에서 18일로 줄어 있었습니다. 주말을 포함해 고객사가 실제로 기다린 기간이었습니다.


차이는 단 하루였습니다.

이 과장은 두 숫자를 나란히 적었습니다.

- 제안서 초안 작성 시간은 평균 41% 단축

- 최종 제안서를 보내기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하루 단축


다만 하루가 줄어든 이유를 AI 덕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같은 유형의 제안이라도 난이도와 고객사의 요구사항이 달랐을 수 있고, 요청일과 발송일이 같은 기준으로 기록됐는지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놓쳤는지는 보였습니다. 회사는 직원들이 초안을 얼마나 빨리 쓰게 됐는지는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초안이 검토와 승인을 거쳐 고객사에 전달되기까지는 살피지 않았습니다.


이 과장의 보고서에도 초안이 완성된 뒤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어떤 숫자를 모았고, 왜 그 숫자를 성과로 보고하게 됐는지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장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1년 전 AI를 처음 도입했을 때, 회사가 가장 먼저 물은 것은 “직원들이 정말 쓰느냐”였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AI 이용권을 구매했으니, 실제로 쓰이는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장은 접속자 수와 대화 건수, 토큰 사용량을 모았습니다. 이번 보고의 ‘212% 증가’도 대화 건수를 기준으로 집계한 숫자였습니다. AI가 얼마나 쓰이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에는 필요한 정보였습니다.


그런데 분기가 지나면서 그 숫자의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활용 현황을 보여주던 표가 성과 보고의 첫 장으로 올라갔습니다. 사용량이 늘면 좋은 평가를 받았고, 부서별 사용률 순위가 공유됐습니다. 회의에서는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보다 “왜 이 부서는 덜 쓰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왔습니다.


이 과장도 그 기준에 맞춰 일했습니다. 사용률이 낮은 부서에 교육을 열고, 활용 사례를 모으고, 다음 보고에서 더 높은 숫자를 보여주려 했습니다.


회사가 반복해서 묻는 질문에 답하다 보니, 보고서는 점점 사용량을 설명하는 데 능숙해졌습니다. 대표님의 질문은 그동안 보고하지 않았던 결과를 요구한 것이었습니다.


많이 쓰게 된 것은 알겠는데,

그래서 회사의 일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41%는 어디로 사라졌나?

이 과장은 먼저 제안 업무를 순서대로 적어봤습니다.


고객사의 요청을 정리하고, 초안을 쓰고, 팀 안에서 검토하고, 가격 승인을 받고, 법무팀에서 계약 조건을 검토합니다. 필요한 내용을 수정한 뒤에야 고객사에 최종 제안서를 보낼 수 있습니다.


제안서 초안 작성은 그중 한 구간이었습니다.


초안을 빨리 써도 다음 검토가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확인할 정보가 빠져 되돌아올 수도 있고, 승인을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고객사에 추가 조건을 확인하고, 답을 기다리는 시간도 있습니다.


다만 이 회사에서 어느 구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이 과장이 확인한 기록에는 요청을 받은 날과 최종 제안서를 보낸 날은 있었지만, 그사이에 누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는 한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41%라는 숫자를 19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는 초안 작성에 투입한 작업 시간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를 포함해 고객사가 기다린 전체 기간이었습니다.


따라서 질문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초안 작성 시간이 41% 줄었는데, 왜 최종 전달까지는 하루밖에 줄지 않았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초안이 완성된 뒤의 과정을 봐야 했습니다.


초안을 빨리 쓴 뒤, 그 일은 어디로 갔는가.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는지, 누군가의 메일함에 머물렀는지, 수정 요청을 받고 돌아왔는지. 그 흐름을 확인해야 전체 기간이 크게 줄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업무 개선은 진짜였습니다. 초안을 더 빨리 쓰게 된 데에는 AI 활용법을 새로 익히고 일하는 방식을 바꾼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 성과를 지울 이유는 없었습니다. 다만 초안 작성이 빨라졌다는 사실만으로, 최종 전달까지 걸린 기간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AI가 만든 변화를 설명하려면, 적어도 다음 네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1. 사용량: 얼마나 많이 썼는가?

2. 산출물: 무엇을 더 많이, 더 빨리 만들었는가?

3. 업무 개선: 업무 전체의 시간과 품질이 좋아졌는가?

4. 사업 성과: 고객, 매출, 비용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이 과장의 보고는 주로 앞의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대표님은 그 개선이 고객사가 기다리는 시간까지 바꿨는지 물었습니다. 예산을 더 투자할지 판단하려면, 그 변화가 사업 성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용량이 늘었다는 사실에서 사업 성과까지 곧장 건너갈 수는 없습니다. 더 빨리 만든 초안이 실제 업무 흐름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 변화가 고객사와 회사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까지 연결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토큰이 말해주지 않는 것

이 과장의 보고서에는 토큰 사용량 그래프도 있었습니다. 대화 건수와 함께 꾸준히 우상향하는 그래프였습니다.


토큰은 AI가 텍스트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단위입니다. 사용량은 처리한 텍스트의 양과 자원 소비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래프가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 유용한 업무가 더 많이 끝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문서를 한 번에 잘 만들어도 토큰을 씁니다. 같은 질문을 다섯 번 고쳐 물어도 쓰고, 필요 없는 문서까지 통째로 넣어도 씁니다. 결과를 얻어서 늘었을 수도 있고,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해 늘었을 수도 있습니다.


토큰 사용량만 봐서는 둘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숫자는 어떤 업무에 자원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살필 때는 유용하지만, 성과를 설명하려면 그 업무의 결과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같은 품질의 제안을 더 적은 비용으로 완성했는지, 더 많은 고객 요청을 처리했는지, 오류와 수정이 줄었는지와 같은 정보입니다.


이 과장에게 필요한 것은 사용량 그래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업무가 실제로 끝났고, 시간과 품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함께 봐야 했습니다.


아낀 시간은 어디에 쓰였나

시간 절감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직원 500명이 하루 20분씩 아꼈으니 약 21명분의 인력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루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21명분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계산으로 확인한 것은 직원별로 조금씩 절약한 시간을 모두 더한 값입니다. 실제로 21명의 업무를 재배치할 수 있게 됐거나, 그만큼의 지출이 줄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직원마다 생긴 20분은 각자 다른 곳에 쓰일 수 있습니다. 밀린 고객 문의에 답할 수도 있고, 제안서를 한 번 더 검토할 수도 있습니다. 20분 일찍 퇴근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을 아꼈다는 보고 다음에는 그 시간을 어디에 썼는지가 따라와야 합니다. 추가로 처리한 업무가 있었는지, 인력 배치나 채용 계획이 달라졌는지, 외주 비용이나 초과근무 수당이 실제로 줄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추가로 수행한 업무의 가치와 지출이 줄어든 효과도 구분해야 합니다. 같은 절약 시간을 인건비 절감으로 환산한 뒤, 그 시간으로 수행한 업무의 가치까지 아무 설명 없이 더하면 성과가 부풀려질 수 있습니다.


비용이 줄지 않았다고 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객사에 더 충실히 응대하거나 미뤄둔 일을 처리했다면 그것도 성과입니다. 다만 회사에 생긴 변화가 무엇인지, 그 이름을 정확히 붙여야 합니다.


일하는 척을 한 것은 누구였나

처음 숫자를 비교했을 때, 이 과장은 AI 도입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많이 썼는데, 왜 달라진 게 없어 보일까.


하지만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AI를 활용한 제안서 초안 작성은 실제로 빨라졌습니다. 직원들도 AI를 익히고 일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런데 보고서에서는 그 변화가 회사 전체의 성과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초안을 빨리 썼다는 숫자가 고객사에 빨리 전달했다는 답을 대신했고, 사용량이 늘었다는 그래프가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근거로 쓰였습니다.


일하는 척을 한 것은 AI도, 직원도 아니었습니다.

일부분의 개선을 전체의 성과처럼 보이게 만든 측정과 보고 방식이었습니다.


그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이 과장 자신이었습니다. 회사가 요구한 숫자를 모았지만, 그 숫자만으로 성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에는 자신도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 과장 역시 사용량이 올라갈 때 안심했고, 그 숫자가 다음 예산을 설명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AI가 쓰이게 만드는 데 필요한 지표와, 거기에 더 투자할지를 판단하는 지표는 같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도입 이후의 질문으로 넘어가야 했고, 이 과장의 보고도 달라져야 했습니다.


12주의 약속

기존 기록을 확인한 날 오후, 이 과장은 경영기획팀장과 함께 대표님에게 다시 보고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평균 19일에서 18일로 줄었습니다. 다만 이 하루를 AI 도입 효과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건별 조건과 중간 과정을 더 확인해야 합니다.”


대표님이 물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무엇을 보면 됩니까?”


이 과장은 준비해온 한 장을 펼쳤습니다. 이번에는 사용량 그래프가 없었습니다.

우선 사용량은 활용 현황으로 따로 표시하기로 했습니다. AI가 쓰이는지는 계속 확인하되, 투자 효과는 업무 결과와 연결해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비교 기준도 다시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기존 26건의 메일과 결재, 계약관리 기록을 맞춰 요청부터 최종 전달까지의 흐름을 복원합니다. 도입 전 14건과 도입 후 12건을 구분해 살피고, 현재 업무 방식과 처리 수준을 확인한 뒤 앞으로의 개선 결과와 비교합니다.


기록만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은 담당자에게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회신이 늦었다고 그 시간 내내 일한 것은 아니며, 회신이 빨랐다고 손이 적게 간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확인할 수 없는 시간은 억지로 채우지 않고 빈칸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마침 그날 아침, 영업팀에는 새 제안 요청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리빙 브랜드를 운영하는 나원리빙이었습니다.


이 과장은 이번 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보겠다고 했습니다. 과거 기록을 분석하는 것과 함께, 지금 진행되는 제안 업무에서 어떤 정보와 문서가 넘어가고 어디서 일이 멈추는지 직접 확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원리빙 한 건만 보면 됩니까?”

“아닙니다. 그 건으로 흐름을 자세히 보고, 같은 유형의 다른 제안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12주 뒤 확인할 항목은 세 가지로 정리됐습니다.

- 고객사가 최종 제안서를 받기까지 걸린 기간

- 부서 사이의 재질문과 반려가 발생한 횟수와 이유

- 확보한 시간이 실제로 쓰인 곳


제안서 초안 작성이 빨라지는 동안 품질이 떨어지거나 검토 부담이 늘지는 않았는지도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이 과장이 자료 취합과 진행 추적을 맡고, 경영기획팀장은 부서별 기록 제공과 확인 담당자를 이번 주 안에 정하기로 했습니다.


대표님은 예산안을 다시 펼쳤습니다.

“어제 회의를 기준으로 12주 뒤에 다시 봅시다. 그때는 무엇을 더 하고, 무엇을 멈출지 결과로 판단하겠습니다.”


첫 예산회의로부터 12주. 이 과장에게는 새 보고 기한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채워야 할 것은 사용량 그래프의 다음 칸이 아니었습니다. 제안서 초안이 완성된 뒤 고객사에 도착하기까지, 그동안 보고서에 없었던 과정이었습니다.


다음 편 예고

그날 저녁, 이 과장은 직원별 사용률 자료를 다시 열었습니다. 앞으로는 활용 현황으로 따로 관리할 자료였습니다.

사용률 하위 명단을 영업 실적과 나란히 맞춰보던 손이 멈췄습니다.


사용률이 가장 낮은 이름은 올해 영업 실적 1위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원리빙 건을 맡은 담당자였습니다.


2편. 실적 1위가 사용률 꼴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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