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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가상자산 서킷브레이커 도입? 말도 안되는 시도인 이유 + 제안


한국은행이 2025년도 지급결제보고서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에도 주식시장처럼 서킷브레이커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빗썸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나 이상 거래 사례를 근거로, 급격한 가격 변동이나 대량 주문이 발생할 경우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 + 여기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서킷브레이커는 시장이 큰 폭으로 오르내릴 때 일시적으로 거래를 중단시키는 제도입니다. 코스피나 코스닥 지수가 1) 1분 이상, 2) 전일 대비 8% 이상의 변동성을 보일 때 발동됩니다.)


겉으로 보면 굉장히 합리적인 주장처럼 들립니다. ‘급락을 막자’, ‘투자자를 보호하자’라는 명분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이 정책은 시장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접근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가상자산 시장이라는 건 애초에 주식시장과는 완전히 다른 논리로 돌아가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가장 먼저 짚어야 할 부분은 시장 구조의 차이입니다. 주식시장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거래 시간이 정해져 있고, 거래소 단위로 가격이 형성되는 폐쇄형 구조입니다. 그래서 특정 구간에서 거래를 멈추면 시장 전체가 동시에 멈추는 효과가 발생하고, 그 사이에 투자자들이 상황을 재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죠.


하지만 가상자산은 다릅니다. 24시간 돌아가는 글로벌 시장이고, 수십 개의 거래소에서 동시에 가격이 형성됩니다. 이 상황에서 특정 거래소만 서킷브레이커를 걸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시장이 멈추는 게 아니라 가격만 왜곡됩니다. 거래는 다른 곳에서 계속 진행되는데, 특정 거래소만 가격이 인위적으로 멈춰버리니까요.


특히 국경 없는 시장에 포인트를 맞춰 보겠습니다. 가상자산은 특정 국가에 묶여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 거래소 간 이동도 자유롭고, 자금 이동도 빠릅니다. 이런 시장에서 한국만 서킷브레이커를 도입한다? 결과는 간단합니다. 가격은 해외에서 형성되고, 국내는 그 가격을 뒤늦게 따라가는 구조가 됩니다. 결국 국내 투자자만 정보와 속도에서 밀리는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는거죠. 실제로 과거에도 특정 거래소에서 입출금을 막았을 때 다른 거래소와 가격 괴리가 발생했던 사례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부분이고요.


여기에 서킷브레이커를 도입한다면 필연적으로 차익거래도 활성화되겠죠. 예를 들어 국내 거래소에서 급락이 발생해서 거래가 중단됐다고 가정해보죠. 그런데 해외 거래소에서는 계속 가격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자금과 시스템을 가진 플레이어들은 해외에서 싸게 매수한 뒤, 국내 거래가 재개되는 순간 가격 차이를 이용해 이익을 가져가게 됩니다. 서킷브레이커는 누구를 보호하는지의 구조가 아닌 누가 그 구조를 이용하느냐의 문제로 바뀌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항상 개인 투자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짚어보자면, 서킷브레이커는 자산의 성격 자체를 잘못 이해한 접근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가상자산은 변동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변동성 자체가 시장 참여 동인의 핵심입니다. +3~5% 상승을 바라고 코인하시는 분들은 없겠죠. 이는 개인이나 기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서킷브레이커를 통해 시장의 핵심 동인을 스스로 제한하겠다는 것은, 탁상공론에서 나온 결론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은의 이번 제안이 보호보다는 통제에 가깝게 느껴지고, 결국 시장을 왜곡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아무 장치도 없이 방치하는 것도 답은 아니겠죠. 결국 핵심은 ’흐름을 유지하면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설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한국형 서킷브레이커 같은 독자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주요 거래소들과 유사한 수준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맞추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상 거래 감지, 대량 주문 필터링, API 트래픽 제한 같은 기술적 장치는 이미 글로벌 거래소들이 쓰고 있는 방식이고, 이런 것들을 한국에도 의무화 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한 노력도 대안이 될 수 있겠습니다. 사실 개인 투자자가 가장 크게 손해를 보는 순간은 가격이 급락할 때가 아니라, 정보가 늦게 전달될 때입니다. 거래를 멈춘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멈춰 있는 동안 내부 정보나 빠른 채널을 가진 쪽이 더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죠.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건 단순히 거래 중단이 아니라, 이상 상황 발생 시 모든 참여자에게 동시에 정보가 공유되도록 하는 구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대량 청산, 특정 지갑 이동, 거래소 내부 리스크 발생 등을 실시간으로 공지하는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지 않겠냐는 뜻입니다.


처음부터 좋은 제도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도입기 초입, 여전히 과도기에 머물러 있으니까요. 하지만 서킷브레이커처럼 '위험하니까 일단 멈추자'는 접근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정보, 글로벌 정합성을 중심으로 설계된 장치야말로 시장을 유지하면서도 리스크를 줄여낼 수 있는 도구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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