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시장을 지배해 온 오랜 정설 중 하나는 ‘비트코인은 나스닥의 고베타 자산’이라는 명제였습니다. 실제로 거시경제의 수도꼭지가 열리고 유동성이 유입되면, 나스닥과 크립토는 예외 없이 같은 방향으로 상승하곤 했습니다. 이른바 ‘커플링’이라 불리던 현상이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공식은 완전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스닥이 AI 붐으로 사상 최고가를 갱신할 때도 비트코인은 독자적인 정체기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였고, 반대로 미 증시가 휘청일 때 홀로 버티는 등 두 자산 사이의 강한 고리가 끊어진 모습이 발견되고 있거든요. 주요 리서치 기관들은 이 현상을 일시적 괴리가 아닌, 크립토 시장의 구조적 변화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간 나스닥에 좌우되던 비트코인은 어쩌다 독립적인 움직임을 보이게 된걸까요?
다양한 리서치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 비트코인, '단일 자산 패시브 지수'로의 진화에서 비롯된 디커플링
비트코인 스위스(Bitcoin Suisse AG)는 과거 비트코인이 나스닥과 완벽하게 커플링됐던 이유로 가상자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을 꼽았습니다. 1) 과거 크립토 자금은 주기적인 유입 흐름을 보였고, 2) 주가 향방에 극도로 민감했으며, 3) 투자자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움직였습니다. 즉, 주식 시장 분위기가 얼어붙으면 투자자들은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코인판에서 자본을 철수시켰고, 증시가 활황이면 남는 유동성으로 코인을 샀던 것이죠. 우리가 비트코인과 미장은 강하게 연결되어있다 생각한 시기가 이쯤입니다.
하지만 비트코인 스위스는 ‘현물 ETF 시대'의 개막으로 자금의 성격이 바뀌었다 진단합니다. 현재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과거처럼 가격을 저울질하는 투기성 자금이 아니라는 뜻이죠. 이제 비트코인을 구성하는 자금은 전통 금융의 패시브 주식 자금처럼 1) 가격에 둔감하고 2) 정기적이며 3) 벤치마크를 따지지 않는 돈들입니다.
패시브 자금 이야기를 해보죠. 전통 주식 시장에 유입된 패시브 자금은 S&P 500이나 나스닥 같은 ‘분산된 지수 바스켓’으로 흩어지는 특징을 지닙니다. 쉽게 말해 1조 원이 들어오면 이 돈이 S&P 500이나 나스닥에 포함된 수백 개 기업(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등)으로 골고루 쪼개지고, 실제로 개별 주가에 미치는 충격이나 영향력은 희석됩니다.
하지만, 크립토 시장으로 유입되는 막대한 자금은 오직 BTC와 ETH라는 ‘단일 자산 상품’으로 집중됩니다. 비트코인 스위스는 이러한 흐름이 크립토 시장에 일종의 ‘중력 닻(Gravitational anchor)’을 형성한다고 진단했습니다. 단일 자산으로 자금이 집중되며 자체 중력에 따른 고유의 수급 방정식이 생겨났고, 비트코인은 이제 엔비디아와 애플 주가가 요동치든 말든 상관없이 독자적인 가격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패시브 자금의 중력은 상승뿐 아니라 하락에도 독자적으로 작용한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최근 인베스팅닷컴(Investing.com)과 JP모건(JPM)은 ‘나스닥이 기술주 랠리로 잘 나간다 한들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대규모 자금 유출이 발생하면 강한 하방 압력이 발생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거시경제 → 미장의 위기 때문이 아니라 ETF 자금 이탈이라는 독자적인 수급 악재로 비트코인의 단일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 크립토씬의 양분화에서 비롯된 디커플링
비트코인 스위스는 ‘크립토 생태계의 체질 개선’을 또다른 디커플링 이유로 꼽았습니다.
과거 나스닥이 기술 기업의 실적을 바탕으로 오를 때, 비트코인은 그저 '미래의 기술 혁신'이라는 막연한 내러티브를 공유하며 커플링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크립토 생태계를 견인하는 경제 엔진이 누구인지 점차 명확해지고 있죠. 현재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전체 수수료의 90%는 탈중앙화 금융(DeFi)이나 웹3 서비스 같은 애플리케이션 레이어가 창출하고 있습니다. 과거 시가총액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레이어 1(L1) 메인넷이나 인프라 자산들은 고작 10%의 수수료를 창출하는데 그치고요.
2020 ~ 2025년 말 사이 블록체인 생태계 내 수수료 매출 흐름
최근 30일 동안 토큰 보유자들에게 실질적인 이익(바이백, 소각 등)을 안겨준 프로젝트 현황
과거에는 이러한 가치 불일치가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규제가 모호했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많이 버는 크립토 프로젝트라도 주식처럼 수익을 분배하거나 자사주를 매입하는 메커니즘을 감히 도입할 수 없었거든요. 토큰은 그저 투표권이라는 추상적인 명분의 거버넌스 토큰에 머물렀고, 투자자들은 코인의 실적이 아닌 나스닥 기술주와의 커플링에 의존해 매매를 진행해 온 느낌도 있죠.
하지만 규제가 무너짐에 따라 판도가 뒤집히고 있습니다. 결제 토큰을 위한 GENIUS Act나, Clarity Act가 가시화되고 있고, 미 정부 역시 토큰화된 현금 흐름에 대해 전통 주식과 유사한 처우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년간의 생존 경쟁 끝에 살아남은 우량 애플리케이션들은 이제 막대한 매출과 유동성, 그리고 탄탄한 사용자를 갖춘 ‘초기 단계의 핀테크 기업’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은 이 토큰들을 단순한 코인이 아니라 명확한 실적을 가진 성장주로 재평가하는 중이고요.
즉, 이제 비트코인이 아닌 알트코인이 기술주로서의 매력과 상승 탄력을 흡수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비트코인은 나스닥 기술주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금이나 글로벌 통화와 경쟁하는 독립적인 자산 지수가 되었고, 기술주 특유의 성장 동력은 알트코인이 가져갔기 때문에, 비트코인과 나스닥의 커플링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3. 채굴 산업의 체질 개선, 과도기에서 비롯된 디커플링
찰스 슈왑(Charles Schwab)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 채굴 기업들이 AI 및 고성능 컴퓨팅(HPC) 데이터 센터로 사업을 전환(pivot)하는 과정에 있다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정착된다면, 비트코인은 좀 더 독자적인 가격 흐름을 보여줄 전망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보죠.
비트코인 반감기가 지나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채굴 기업들의 마진은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여기에 이들은 매달 지출해야 하는 막대한 전기세와 운영비를 감당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시장에 대거 던지는 강제적 매도를 선택해야만 했죠. 따라서 이 시기에는 자금난에 봉착한 채굴자들의 매도 폭탄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나스닥이 아무리 상승해도 비트코인은 홀로 주저앉는 현상이 발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마라톤 디지털(Marathon Digital), 라이엇 플랫폼즈(Riot Platforms) 등 대형 상장 채굴사들은 완전히 새로운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AI 붐에 따라 자신들이 보유한 고전압 전력 인프라에 대한 거대한 수요가 생겼고, 이들은 채굴용 ASIC 기계를 빼고 AI 그래픽카드를 채운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며 빅테크 기업들과 장기 계약을 맺기 시작했죠. 이제 채굴자들은 비트코인을 팔지 않아도 AI 사업을 통해 매달 따박따박 막대한 현금 흐름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 채굴원가 비교 차트
차트를 살펴보겠습니다. 각 항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하늘색 선 (BTC: Price): 실제 비트코인 가격입니다.
검은색 선 (Efficient Miner Production Price) : 최신 장비와 싼 전기세를 쓰는 '효율적 채굴자들의 채굴 원가'입니다.
초록색 선 (Inefficient Miner Production Price) : 구형 장비를 쓰거나 전기세가 비싼 '비효율적 채굴자들의 채굴 원가'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구간은 2024 ~ 2026년 구간입니다. 반감기 때문에 채굴 원가(검은색·연두색 선)는 껑충 뛰어올랐는데, 대형 채굴사는 데이터 센터로 피보팅에 성공하며 비트코인 매도에서 자유로워진 상황입니다. 따라서 원가선 부근에서 매도 압력이 예전보다 훨씬 더 적게 발생하고, 현재 비트코인 가격에 하방 경직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채굴 기업의 체질 개선을 통해 매도 압력이 사라졌다면, 최근 비트코인 시장에서 발생하는 하락은 채굴자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비즈니스 전환 과정’ 그 자체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현재 코인셰어즈(CoinShares)와 온체인 리서치에 따르면, 북미 상장 채굴사들은 2026년 1분기 한 분기 동안에만 무려 32,000개가 넘는 비트코인을 매도했습니다. 이는 크립토 역사상 최악의 하락기였던 2022년 루나 사태 당시의 분기별 매도량(약 20,000 BTC)을 가볍게 뛰어넘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매도가 전기세를 못 내서 던지는 ‘생존형 투매’였다면, 지금의 매도는 AI 데이터 센터라는 더 큰 노다지를 캐기 위한 ‘투자형 분할 매도’입니다. 고성능 AI 서버를 구축하고 고전압 전력망을 AI용으로 개조하는 데는 막대한 자본(CapEx)이 필요합니다. 대형 채굴사들은 고가의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 대차대조표에 쟁여두었던 비트코인을 시장에 대거 유동화하고 있는 모습이죠. 즉 시장을 망가뜨리는 파산형 투매는 사라졌지만, 신사업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거대한 물량 소화가 진행되면서 최근의 과도기적 하락세를 유발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형 채굴사들이 한정된 전력 자원을 AI 데이터 센터로 돌리면서, 비트코인 네트워크 전체의 해시레이트 증가세가 둔화되거나 일시적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이를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성장 정체나 매력도 저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AI 주식이 기대를 받을수록 비트코인에는 하락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일어날 수 있는거죠.
비트코인 해시레이트 차트
4. 통화정책 비동기화에서 비롯된 디커플링
마지막으로는 국가별 통화 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타는 현상을 꼽아볼 수 있겠습니다. 흔히 우리는 미 연준의 금리 결정과 나스닥 지수만을 매크로의 절대적인 기준선으로 삼아 시장을 진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 비트코인은 국경 없이 전 세계에서 24시간 실시간으로 거래되는 글로벌 유동성 자산이기 때문이죠.
리얼비전(Real Vision)과 다수의 매크로 리서치는 나스닥과 비트코인이 유동성을 흡수하는 원동력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 연준이 고금리를 끈질기게 유지하는 동안에도 나스닥이 최고가를 갱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AI 빅테크 기업들의 압도적인 ‘실적의 힘’이 긴축 압박을 찍어눌렀기 때문이죠. 어찌됐든 나스닥은 철저히 미국 기업의 이익을 먹고 자란 셈입니다.
반면, 특정 기업의 매출이나 실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비트코인은 순수한 자본 통화량의 움직임에만 반응합니다. 비트코인은 미국의 통화량뿐만 아니라 중국 인민은행(PBOC)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하 사이클, 그리고 일본은행(BOJ)의 엔화 유동성 등 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M2 공급량 총합에 훨씬 민감하게 동행하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죠
( + 미국이 M2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시기마다 다르지만 보통 35~40% 안팎입니다. 압도적인 1위인 건 맞지만, 나머지 유럽(ECB), 중국(PBOC), 일본(BOJ), 그리고 영국의 비중을 다 합치면 60%에 육박하는 만큼 다른 나라의 통화 정책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요소라는 뜻이겠죠.)
여기서 디커플링의 결정적인 단서가 제공됩니다. 미국 증시가 빅테크의 독주로 호황을 누릴지라도, 글로벌 전체 유동성 총량이 수축하거나 국가별 통화 정책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되는 시기에는 두 자산이 엇박자를 타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거죠.
현재 주요 중앙은행의 기조를 살펴보겠습니다.
FED : 인플레 의식, 상대적으로 긴축적인 스탠스
ECB : 미국보다 완화적인 방향
PBOC : 경기부양 필요, 완화 성향
BOJ : 과거 대비 정상화 시도, 그러나 완화적 성향
"?? 아니 뭐 미국 빼고 다들 완화 외치는데 비트코인 가격은 왜 이럼?"
다만 완화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선 안되겠죠.
현재 중국과 유럽의 완화 정책은 자산 시장을 부양하는 호황기형 완화가 아니라, 붕괴를 막기 위한 인공호흡기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엔캐리 청산 압박이 글로벌 신용을 일시적으로 위축시키면서, 비트코인은 완화의 시기에서도 유동성의 혜택을 온전히 받지 못한 채 하락세를 겪는 디커플링을 연출하고 있다 볼 수 있겠습니다.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1) AI는 연준이 긴축을 하든 말든, 좋은 실적으로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있습니다.
2) 반면 실적이랄 것이 없는 비트코인은, 세계 중앙은행들이 주는 밥(유동성)이 필요하죠.
3) 미국이는 어려운 것 같고.. 다른 나라들이 한 상 차려줄 것 같은 상황입니다(완화적 통화정책).
4) 근데 알고보니.. 이게 맛있는 한끼(성장형 자금)가 아닌, 억지로 밀어 넣는 병원밥이네요!
비트코인이 ‘글로벌 유동성의 온도계’로 진화했다 보는 시선이 늘어났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미장과의 커플링이 끊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비트코인과 미장의 디커플링 원인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쩌면 정답은 여기에 없을 수도, 혹은 여러가지 현상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만들어낸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나스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관성이 무너지며, 크립토 씬은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공식이 통하지 않는 지금, 단순히 미국 증시의 가격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이면 아래의 새로운 흐름을 읽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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