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여전히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단 학생들이
꽤 많다는 사실이요.
극작과 학생들에게 작법을 가르치고 있으니
당연히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을 만나겠습니다만,
그 비중이 제 대학 시절보다 많아진 느낌입니다.
아마도
꿈을 꾸기가 조금은 익숙한 세상이어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건, 현 시대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감과는 별개로 하는 말입니다.
91년생인 제 학창 시절만 해도
남들보다 튀는 장래 희망은 꽤나 별난 일이었습니다.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건 취업률이었고,
그래도 생존이 우선이던 시기였죠.
그래서 동기 학생들 중에서도
처음부터 드라마 작가를 지망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부분 교양, 예능, 시사 프로그램작가를 이야기했고
그중 몇 명이 기회가 되면 드라마도 해보고 싶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신기했습니다.
지금 드라마 시장은 위태롭고,
제작 편수는 급감해서,
드라마 작가가 되기가 예전보다 더 어려워보이니까요.
"너희들 진짜 어쩌려고 그래?"
하지만 애정어리게 봐집니다.
15년은 앞서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으로서
너무 응원합니다.
그래서 더 냉정하게 말합니다.
"전력투구하지마, 제대로 된 보험 하나는 무조건 들어."
기획 PD로 일하며
많은 신인 작가들을 보았습니다.
재능이 있었고,
제작사 문턱을 드나들었고,
수년을 치열하게 버텼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치열했습니다.
칭찬과 기대,
공격적인 요구와 스트레스 속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결과는 잔인합니다.
지치고,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도, PD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가정을 꾸려 생존에 대한 책임의식이 생기지 않았다면,
작가가 되기 위해 전력투구했을 겁니다.
그리고 지쳐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드라마 판에서 기획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직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전력투구하지 못해 생기는 갈망 덕분에
습작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으며,
글감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좋은 글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경험이 적다는 것은
느껴본 감정의 종류가 적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드라마는 결국 인간의 희노애락인데,
인생의 단짠단짠을 다양하게 느껴봐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요.
또한 사회 경험은
잘 알지 못하는 세계를 이해하는 힘을 줍니다.
사람 사는 세상, 거기서 거기니까.
직장생활을 해봐야
다양한 사회상을 설득력 있게 그릴 수 있습니다.
요즘,
의사, 변호사, 판사 선생님들이
웹소설이나 드라마 많이 쓰시죠.
정말 질투나는 일입니다.
가진 자(?)들이 왜 우리의 영역까지!?
하지만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글감이
보통이겠습니까?
작가란 직업에는 대단한 장점이 있습니다.
시간이 무기가 되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많은 드라마 지망생들이
한동안 절필했다가도
다시 펜을 들고, 당선되고 집필까지 이어갑니다.
그래서 선배로서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줄 말은 분명합니다.
"극작과 졸업하고 할 수 있는 일 많아.
드라마 작가 되려고 처음부터 전력투구하지 마.
천천히, 그리고 길게 봐.
생업 속에서 삶을 충분히 경험해.
오래 일할 수 있고, 보람이 남는 일을 먼저 찾아.
제대로 배우고, 습작 해.
그래야 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