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클래스101에서 강의를 개설했습니다
"8년 차 에디터에게 배우는 '잘 팔리는' 콘텐츠 제작법" 이라는 이름의 강의였죠.
감사하게도 누적 수강생 1만 명이 넘는 분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8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죠? 그 사이 8년 차 에디터는 16년 차가 되었고 CMO라는 직함을 가져보기도 했습니다. 타이틀의 숫자도, 직함도, 하는 일도 전부 바뀌었으니, 이 한 줄은 이제 저조차 소개하지 못하는 문장이 된 셈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저만 바뀐 게 아니더라구요. 세상에 AI가 나와버렸죠. 신입이 16년 차보다 빠르게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는 시대에 경력은 더 이상 신뢰의 절대적인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콘텐츠 제작법'이라는 약속도 마찬가지. 만드는 행위 자체를 AI가 대신하기 시작한 이상 "잘 만드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제안의 무게 역시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AI가 대체하지 못한 것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AI는 만드는 속도를 바꿨습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읽는 능력은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직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 능력의 부재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죠.
당장 레퍼런스를 찾을 때를 떠올려 볼까요? 경쟁사의 사례를 훑으며 완성물의 표면만 스캔해 AI에 던지고 결과물로 출력하기에 급급합니다. 직접 손으로 옮기던 시절에는 적어도 재료와 오래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딱히 구조를 보겠다는 의도가 없어도, 만지는 시간이 물리적 길면 아무래도 눈에 걸리는 게 생기거든요. 지금은 그 접촉 시간 자체가 사라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기획의 본질도 자연스럽게 누락됩니다. 왜 이런 형태여야 했는지, 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 수많은 선택지 중 하필 왜 이것이 살아남았는지, 한 줄의 카피 뒤에 얼마나 많은 시안이 폐기되었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겉은 비슷한데 작동하지 않는 끔찍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형태를 가져왔지 구조를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설계도 없이 건물 외관만 따라 지은 것 처럼요.
매우 높은 확률로 사람이 들어가면 무너지겠죠?
다행히도 본질을 읽는 눈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쌓을 수 있습니다. AI로 매끈하게 출력된 완성물 앞에서 "잘 만들었네" 하고 넘어가는 대신 거꾸로 뜯어보는 겁니다. 이런 결과물이 나오려면 기획자가 어떤 판단을 내려야 했는지, 그 판단 뒤에 어떤 맥락이 깔려 있었는지를 천천히 씹어보고 복원해 보는 것. 저는 이 과정을 역설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걸 지금부터 매주 같이 해보려고 합니다. 혼자 하면 심심하잖아요.
이 커뮤니티는 잘 되는 것들의 구조를 훔치는 곳입니다.
여기서 훔친다는 것은 단순한 베끼기가 아닙니다. 완성물의 껍데기를 벗기고, 그 아래 박혀 있는 기획 의도와 의사결정의 골조를 뜯어내서 자신의 맥락에 이식하는 과정입니다. 표면만 가져오면 모방에 그치지만 구조를 가져오면 실력이 되더라구요.
매주 하나의 콘텐츠를 올려놓고 뜯을 예정입니다. 다행히도 평소의 저는 각종 광고, 뉴스레터, 브랜딩, 캠페인등 무엇이든 가르지 않고 잡식하는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보다가 뭔가 떠오르면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1. 해부 : 감각이 아닌 언어로 분해합니다
"감도 높다" 정도의 나이브한 단어 뒤에 숨은 구체적인 장치를 찾아내는 연습입니다. 메시지 구조가 잘 짜인 건지, 타깃 설정이 날카로운 건지, 제안의 프레이밍이 영리한 건지. 형용사를 명사로 바꾸는 순간 당신의 분석은 재현 가능한 도구가 됩니다.
2. 역추적 : 완성물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획자의 의사 결정 과정을 감히 복원해 봅니다. 이 헤드라인이 최종안이 되기 위해 어떤 의사결정이 존재했을지, 이 구조가 살아남기까지 어떤 선택지가 탈락했을지, 이 방향이 통과되려면 어떤 비즈니스 맥락이 뒤에 깔려 있었을지. 정답은 없습니다. 이 질문이 요구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맥락을 읽는 근육을 키우는 거니까요.
3. 이식 : 뜯어낸 구조를 자신의 현업에 심습니다.
1과 2에서 멈추면 방구석 평론가가 됩니다. 써먹을 수 있어야 진짜 내 것이 됩니다. 해부하고 역추적한 그 구조를 들고 자기 작업대로 돌아갑시다. 내일 올려야 할 콘텐츠에 그대로 적용합시다. 한 줄을 쓰더라도 아까 뜯어본 그 설득 장치가 내 문장 안에 심겨 있는지 확인합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찾아오도록 노력하여 보겠습니다.
일주일 간 여러분의 답변을 충분히 살핀 뒤, 다음 주에 저의 해석을 덧붙일 예정입니다. 제 해석이 완벽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하나의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경험상 저는 가장 잘 아는 주제를 말할 때 타율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첫 번째 역설계는 제 사례로 편안하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8년 차 에디터에게 배우는 '잘 팔리는' 콘텐츠 제작법
당시 배경을 복기해볼까요. 2019년의 클래스101은 런칭 초기였고, 실무자의 온라인 클래스라는 포맷 자체가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이었습니다.
이 맥락을 바탕으로 아래 질문에 답해 주세요.
Q1. 해부 이 타이틀 속 4개 이상의 설득 장치를 찾아내고, 이것이 2026년 현재에도 유효한지 판단해 보세요
(힌트: 설득 장치는 거창한 게 아닙니다. 숫자, 직함, 수식어, 문장 구조, 조사 하나까지 모두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에게 배우는'이라는 표현이 왜 ~'가 알려주는'이 아니었는지도 생각할 수 있겠죠?)
Q2. 역추적 당시 제가 '8년 차', '에디터', '잘 팔리는'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탈락시킨 후보안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힌트: 당시 시장에서 강사를 신뢰하게 만드는 요소가 무엇이었는지부터 생각해 보십시오. n연차가 아니었다면 무엇이 대안이었을지, '잘 팔리는' 대신 어떤 수식어가 후보에 올랐을지 상상해도 좋겠습니다)
Q3. 이식 지금 당신이 개설할 온라인 클래스의 타이틀 한 줄을 쓰고, 그 안에 심어둔 설득 장치를 역설계해 보세요.(힌트: 타이틀을 먼저 쓰고 장치를 찾지 마세요. 순서를 뒤집으십시오. 내가 심고 싶은 장치를 먼저 정하고, 그 장치가 작동하는 문장을 만드는 겁니다. Q1에서 뜯어낸 장치 중 지금도 유효한 것이 있다면 그걸 가져와도 됩니다.)
당부드리는 말씀
상상하지 말고 쓰세요. 볼펜을 꺼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세요.
생각과 글은 다릅니다. 쓰는 순간 기획의 뼈대는 언제나 선명해집니다.
댓글로 남겨주셔도 되고 제 이메일로 전달주셔도 됩니다. (trackdoro@gmail.com)
다음 주 목요일, 여러분의 답변 위에 저의 해석을 살짝 올려볼게요.
[역설계 노트 #02] 1만 명이 들은 강의 제목,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